고택안내

농남선생이 탄생하시고 직계자손이 650여년을 이어살아오고 있는 고택

농암종택은 농암선생이 태어나고 성장한 집이며, 직계자손들이 650여년을 대를 이어 살아오고 있는 집이다. 최초 이 집을 지은 분은 영천이씨 안동입향시조 이헌(李軒)으로, 선생의 고조부이다. 
고려말 영천에서 서울로 내왕하다가 이곳 산수를 사랑하시어 그대로 복거하였다. 자손들은 이분으로부터는 23세손, 선생으로부터는 18세손까지 내려왔다. 농암선생이 ‘불천위不遷位’로 모셔졌기에 ‘농암종택’으로 부른다. 

종택은 2,000여 평의 대지 위에 사당, 안채, 사랑채, 별채, 문간채로 구성된 본채와 긍구당, 명농당 등의 별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긍구당肯構堂’은 1370년 전후, 이헌이 지은 건물이며, ‘명농당明農堂’은 1501년 선생 나이 44세 때 귀거래歸去來의 의지를 표방하고 지은 집으로, 벽 위에 ‘귀거래도歸去來圖’를 그렸다. 

분천헌연도汾川獻燕圖(보물 1202)에 등장하는 종택

종택과 ‘분강촌汾江村’의 모습을 보여주는 그림은 여러 종류인데, 특히 1526년에 그린 ‘분천헌연도汾川獻燕圖(보물 1202)’는 선생 당시의 풍광이 잘 나타나 있다. 바깥마당에 거목의 홰나무(槐木)가 있어 이를 ‘구인수九印樹’라 불렀다. 그 연유는 선생 당시 아들, 사위 등 9남매가 벼슬을 하여 수연壽宴을 하기 위해 모이면 이 나무에 그 인끈 9개가 걸렸기 때문이었다. 또 마당에는 옥인석玉印石, 금상석金床石이라는 우아한 4각형의 단아한 바위가 있었고, 명농당 앞에는 영금당影襟塘이라는 아담한 연못도 있다. 그러니까 종택 건물 역시 ‘긍구당’과 같은 시기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니, 600년의 역사는 넘는 건물이라 할 수 있다.